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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홀로 떠돌이 10년, 내 집 마련 투지가 불끈: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책 2020. 3. 16. 23:26
#1. 서울 떠돌이 내년이면 10년, 나도 내 명의 집을 갖겠다
서울살이 10년째 되어갑니다.
20대 중반, 취업과 동시에 첫 서울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서울 이모집에서 고시원으로 고시원에서 월 50만 원 원룸으로, 월 45만 원 원룸으로, 보증금 1억 2500만 원 전세집으로, 그리고 현재 보증금 1억 8500만 원 전세집까지. 이 커다란 도시에서 내 몸 하나 누일 작은 공간 찾는 일이 왜 이렇게 서글프고 팍팍할까요.
제 궤적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모범답안 같습니다. 신촌에서 망원으로 망원에서 방화동으로 이사온 궤적으로 본다면 이제 다음 거주 장소는 이곳보다 더 먼 서울 변두리 혹은 경기권일 것 같네요. 실제로 경기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음 이사할 때는 반드시 내 집을 사서 나가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고, 서울 집값은 너무 비싸니 제 능력상 가능한 경기권으로 가자는, 어쩔 수 없는 선택 같은 거죠.
결혼할 사람이 있지도,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도 않아서, 제 인생 목표는 '혼자 어떻게 잘 살 것인가'입니다. 이런 말을 엄마에게 하면 엄마는 말합니다. "결혼하면 다~ 생긴다, 그러니까 좋은 가구 살 필요없고 짐 늘리지도 마라. 결혼하면 다 새로 살 텐데 뭐하러 돈 낭비하나.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결혼해라."고요.
제 취미 중 하나는 살고 싶은 집 사진을 찾아보고 저장해두는 겁니다. 나도 언젠가 이런 집에 살겠다, 꿈꾸며 상상해보는 건 오늘을 열심히 살아낼 원동력이 되고는 합니다. 몇 년 전 지금보다 더 어릴 땐, 결혼을 할지 안 할지 모르고 계획도 없으면서 엄마 말을 따라, 마치 향후 몇 년 안에 결혼을 할 것처럼 굴었습니다. 무언가 집안에 들여놓아야 할 때면 엄마 말이 떠올라 가구를 늘리는 게 죄스러웠고,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가성비를 따져서 식기며 가구며 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지내도 결혼은 제 계획표 안에 생기지도 않았고, 도대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일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이토록 유예하며 살아야 하나 싶었습니다. 이러다 엄마의 계획표에만 있는 나의 결혼이 내 인생 계획표에 영영 생기지 않는다면 나는 집도 절도 없이 싸구려 가구며 식기만 싸들고 방랑해야 하는 독거노인이 될 수도 있겠구나 위기감이 생겼습니다. 어느날 밤,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했을 때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식은땀이 줄 흘렀죠.
#2. 결혼 안 한 언니들, 그녀들의 삶의 방식이 너무 궁금해
그런 제가 가장 궁금한 사람들은 '자기 집을 마련한 결혼 안 한 여자'입니다. 그 사람들은 뭘 어떻게 했길래 그 어렵다는 내 집 마련을 혼자 해냈을까, 너무 너무 궁금합니다. 내 집 마련을 못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지금의 재력 상태에 있다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한 내일에 잠직당하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그들의 인생 계획, 라이프 스타일 그 자체가 저는 궁금합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 김하나와 황선우에 대해 책 출간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전 책을 통해서도 있지만 그보다 인스타그램으로 공개된 그들 삶의 모습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망원동 한 아파트를 구매해 둘이 함께 갚으며 살아간다는 것(그 집 대출을 다 갚았다는 인스타그램을 볼 때의 그 부러움이란) 고양이 네 마리와 동네 친구들과 재미있는 삶을 꾸려간다는 것 모두 부러움이자 궁금함의 대상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으로 둘의 라이프 스타일이 책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부러움과 궁금함이 또 일었죠. 나는 왜 이런 기획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무릎을 탁 쳤고, 아,이 책은 꼭 사야 한다, 편집자와 독자의 마음을 저울질하며 책 출간을 기다렸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입니다. 결혼이 당연한 삶의 수순처럼 여겨지는 건, 그래야만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결혼 아닌 다른 삶의 방식 또한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러한 이야기가 사례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술친구가 집에 있고,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주방이 있으니 밖으로 술을 마시러 다닐 이유도 없어 집에서 놀면 되었다. 일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거나 여행 가서 자잘하게 예쁘고 쓸모없는 물건을 사들이거나 하는 즐거움보다, 몇백만 원씩 모아서 대출금 줄여나가는 재미와 정신적 보상이 훨씬 컸다. 물론 10년 기한으로 빌린 돈을 미리 갚으면서 조기 상황 이자를 물어야 했지만 그 1년 동안 집중해서 빚을 갚아본 경험은 나를 많이 바꿔놓았다. 꺼려하고 피해오던 대출이 오히려 경제적으로 한 계단을 올라가는 동력이 된 것이다. 지금은 빚이 좀 있으면 어때, 하고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러서 회사 상여금 같은 목돈이 생기면 대출을 갚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투자를 한다. _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58~59쪽 중에서
#3. 돈, 돈 하며 사는 내가 될 줄 몰랐지만
마음의 여유도 경제적 여유에서 오는 거더라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성을 찾기 어렵고, 여성들의 근속년수와 연봉은 같은 조건을 가졌다 하더라도 남성에 비해 훨씬 짧거나 낮습니다. 그러니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노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내 삶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은 더 어렵고 대단한 일입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선배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던 차에 이 두 저자의 이야기는 마치 어떤 삶의 귀중한 방식 하나를 엿본 것 같았습니다.
책 중간중간 이들이 사는 공간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아, 사진으로 보고 나니 투지가 더 생깁니다. 나도 내 집 마련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투지 말이죠. 집을 사겠노라 결심하기까지 이들도 많이 망설였구나, 대출을 받고 나서도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았구나, 인스타그램으로 보여지던 겉모습 속엔 똑같이 고민하고 불안해했구나 알았을 땐 무서워서 발 떼기를 주저하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이런 건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라고 인정하자 초조함도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습니다.
늘 머물던 안전지대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보면 세상에 생각해온 것만큼 큰 위험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겁쟁이일수록, 위험한 상황을 좀처럼 만들지 않는 자신의 본능적 감각을 믿어봐도 좋을지 모른다. 조금 대담해진 쫄보는 오늘도 라니스터에게서 배운다. 빚은, 지지 않는 게 아니라 잘 갚는 게 중요하다. _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59쪽 중에서
재미있는 일러스트가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유쾌한 이 책의 톤에 아주 잘 어울립니다. 어떤 삶의 방식을 꿈꾸든 가장 중요한 건 경제적 조건입니다. 돈, 돈 하며 사는 건 나는 아닐 줄 알았는데 이제 저는 돈, 돈 하며 살고 싶습니다. 돈이 있어야 초조한 오늘과 불안한 내일에 가슴 조리며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절실히 느끼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결국 경제적 조건에서 옴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들이 많은 비혼 여성들의 롤모델처럼 여겨지는 것도 결국 그들이 경제적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내년 8월이면 전제 계약이 끝납니다. 8월에 닥쳐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하는 날부터 생각했습니다. 다음 집은 내 집이다, 라고요. 서울, 서울, 빛나고 빌어먹을 도시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면 좋겠지만, 변두리 구석 어디가 되어도 좋으니 내 집 한 채를 만들고 싶지만, 그게 정 안 된다면 경기도 어디라도 꼭, 정말이지 반드시, 마련하고야 말겠다고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덮으며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아, 이 책에는 두 저자가 함께 살며 겪는 더 다양한 일들과 에피소드, 재밌는 사유가 담겼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두 여자의 내 집 마련 분투기>를 읽고 쓴 것만 같네요.ㅎ)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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