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토록 쉽고 명쾌하고 과학적인 우울증이라니!: <우울할 땐 뇌과학>
    2020. 3. 17. 23:44

    #1. 저는 제가 우울증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감정기복이 크지 않습니다. 말수도 적죠.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편입니다.

    말수도 적고 감정기복도 적고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만 충전이 되는 저라는 인간의 내향적 성향을 온전히 인지하지 못했을 땐, 저에게 우울증이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종종 자주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니 이 기분이 우울감인가 보다,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보통 기분이 5라고 한다면, 저의 보통 기분은 3-4쯤 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 우울증인가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감정기복이 적다는 것, 말수가 적다는 것,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 충전할 수 있다는 것, 떠들썩한 모임은 피하고 싶고 두세 명 모인 자리가 좋은 것... 내향적 성향에 더해 감정기복이 있지도 않은 성격이다 보니 우울증과 쉽게 혼동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음을 잘 압니다. 

     

    그러다 어느날,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으며 치료해본 적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다 제가 저에게 우울이 있는 것 같다 했더니, 그 사람이 반색하며 당신은 우울증이 절대 아니다 말했습니다. 우울증은 그런 게 아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 감정이 있어야 할 곳이 텅 빈 기분, 희망이 없고, 어떻게 할 줄 모를 만큼 절망적인 상태, 예전에 즐겁던 일이 더 이상 재미있지 않은 것, 음식도 친구도 취미도 기력도 급속도로 떨어지는 상태라 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그런 상태냐 물었고, 저는 그렇지 않다 대답했지요. 

    사람들은 저를 차분한 성격이라 말합니다. 크게 동요하지도 그렇다고 크게 절망하지도 않는다 말합니다. 제가 겉으로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란 걸 제가 안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저는 제가 마음속으로 놀라는 정도만큼 다른 사람들도 느낀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제 스스로 느끼는 감정의 3분의 1쯤으로 다른 사람들은 인지하고 있더랬습니다. 아, 나 정말 바깥으로 기분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정말 놀랐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기분을 표현해야 할 땐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반 보쯤 더 나아가서 표현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제 기분을 알더라구요. 

     

    #2. 가벼운 우울까지도 우울증 환자로 내모는 건 문제가 아닐까?

     

    제목이 분명하고 명쾌합니다. 상쾌한 색감의 일러스트는 이 책이 쉽고 재밌게 쓰였되 분명한 어조로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훌륭한 표지라고 생각합니다.

     

    <우울할 땐 뇌과학>을 읽은 건, 우울증 책이 열풍을 몰고 오던 2년 전쯤입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필두로 대한민국에 갑자기 너무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 대체로 기분이 가라앉아 있어 스스로도 우울증을 의심했던 경험이 있던 저는 우울증 책들을 보며, 가벼운 우울감까지도 우울증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일상을 살며 가벼운 감기를 앓았다 회복하는 것처럼 가벼운 우울을 느꼈다가 괜찮아졌다 하는 거야말로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그런 우울까지도 병이라 말하고 약을 처방하고 환자로 여기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 그런 자신을 우울증 환자라고 생각하는 거야말로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가벼운 우울일지언정 우울은 맞으니 그런 자신이 힘든 상태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울고 싶을 땐 울고 웃고 싶을 땐 우는 사람이 되자는 건강한 구호에 반기를 들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일상의 가벼운 우울감까지도 환자로 치부하는 건 현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을 우울증 환자로 내몰 수 있는 위험한 시각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열풍처럼 부는 우울증에 관한 에세이가 아닌 좀 더 과학적인 책으로 우울증을 접해보고 싶었습니다. 딱딱한 과학책도 이론서도 읽을 처지는 못되니 너무 어렵지 않게, 그러나 해법은 담고 있는 듯한 이 책을 골랐습니다.

     

    #3. 이 책의 최강점:

    '명쾌한 해결책+쉬운 과학적 근거 = 납득하는 인간 -> 행동하는 인간' 

    이 공식을 완성해준다!

     

    보통 우울증을 마음의 문제라 말합니다. 그래서 정신과를 찾아가거나 심리치료실을 찾으며 마음을, 심리를 우울에서 치료하려 하지요. 그러나 정말 문제는 우울에 빠지는 뇌가 문제라고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출간 당시 나쁘지 않게 팔렸었는데요, 당시 나온 많은 책들이 에세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마음, 개인적 이야기들이 많았지요. 하지만 마음이란 건, 개인의 경험에서 겪는 우울이란 건, 공감을 하고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언정 '그래서 어떻게'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니라, 좀 더 과학적으로 알 수 없을까, 좀 더 객관적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은 우울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석해주고 해결책까지 제안해주는데, 그 중심이 마음이 아니라 뇌에 있다는 게 한 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몸에서 과학의 끝판왕은 뇌 아닐까요?

    그러니 불안해한다고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 말라. 뇌가 우리를 도와주려 하는 거니까. 불안 회로와 걱정 회로의 특정한 성향이 때로 우리를 행복해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문제는 그 회로들이 너무 자주 활성화되거나 서로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불안과 걱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면 걱정과 불안을 이겨내게 해주는 마음챙김과 받아들임을 향해 성큼 다가설 수 있다. _<우울할 땐 뇌과학> 72쪽 중에서

    이 책이 이야기하는 해결책은 어렵지 않습니다. 습관을 동지로 만들어라, 수면을 충분히 취하라, 감사하는 삶을 살라, 그저 사람들 속에 있어 보라, 운동을 하라, 최선의 결정이 아닌 괜찮은 결정을 하라, 같은 단순하고 어찌보면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쉬운 과학적 근거를 들어주며 납득하여 행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납득한 인간은 행동하기도 쉽습니다. 이 책의 강점은 '명쾌한 해결책, 쉬운 과학적 근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중서를 판단하는 주요한 기준 중 하나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능력'입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건 쉽습니다. 정말 어려운 건,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겁니다. 대중서를 집필하는 저자들에게 보통 '평범한 고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글을 써달라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 수준에서 쓰되 풍부한 예시와 재미까지 담았다면 따따봉으로 좋은 거죠.

    대개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는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하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다. _<우울할 땐 뇌과학> 161쪽 중에서

    <우울할 땐 뇌과학>은 그 기준을 아주 잘 충족합니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우울증에 왜 걸리는지 이야기하는데 어렵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해결책을 알려주며 과학적 근거를 들어줍니다. 우울증이 우리 뇌가 하강나선에 갇혔기 때문이라 말하며, 우울증을 빠져나오는 상승나선을 타는 방법을 알려주는데요, 1부가 하강나선에 갇힌 뇌에 대해, 2부가 상승나선을 만드는 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고개 끄덕이고 이해한 다음 실천까지 할 수 있게 돕습니다. 훌륭한 교양서에 실용적 요소까지 가미했습니다. 아, 이 얼마나 훌륭한가요?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