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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꺼운 만큼 깊은 내공을 지닌 줄만 알았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2020. 3. 11. 23:56

    #1. 전작을 너무 좋게 읽었던 걸까요?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책.

    수천 년 지식을 뼈다귀 같이 설명하는 책. 그런데 핵심은 또 정확히 전달되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던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입니다. 실제로 뼈다귀 같은 캐릭터 일러스트가 중간중간 들어가 있어 읽는 묘미가 되기도 하지요. 1, 2권을 읽었을 때, 이 책이 이토록 단순하고도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내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건, 단순히 저자가 핵심을 간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맞았지만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는 걸 이번에 출간된 제로 편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탄산수에 한라봉차를 타 먹으며 읽어도 청량하지가 않네요. 고양이 표정이 독서하는 제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네요.

     

    #2.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를 읽으며 든 세 가지 의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편을 읽고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요, 1, 2권이 너무 수작이었던 걸까요. 오랜만에 나오는 이 시리즈의 서막과도 같은 책에 도대체 어떤 이야기 실렸을까 많이 궁금했습니다. 저자가 많이 준비했을 거란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준비한 것이 부담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 첫 번째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 두 번째는, 저자도 이걸 이해하느라 참 애썼겠다 싶었다는 것, 세 번째는, 제로 편 속 지식을 저자도 빠삭하게 간파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3. 핵심만 전달한다 하지만 간결하지도 이해가 쉽지도 않다

     

    어려운 말을 어렵게 하는 건 쉽습니다. 정말 어려운 건, 어려운 말을 쉽게 하는 겁니다. 그 어려운 일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권과 2권이 해내었다면, 이 책은 그다지 그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세상의 탄생,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몇 번을 페이지 건너뛰기를 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파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적잖이 지겨웠거든요. 책 두께도 두꺼워서 그 지겨움은 배가 되는 기분이죠.  

    이 책은 마치 어른이 되어 읽는 누드교과서 같습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정보를 그저 입말로 풀어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핵심만 간추렸을 뿐인데도 쉽지가 않다면, 차라리 우주와 종교에 관한 다른 대중서를 찾아보는 게 지식의 측면에서도 재미의 측면에서도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야 전공자, 전문가, 교수, 선생 들 중 어려운 걸 쉽고 재미있게 잘 설명하는 개론서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까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의 정체성을 잃었달까요?

    두께는 두꺼운데, 두꺼우면 내용은 당연히 많은 건데, 그러면 내공도 두꺼워야 하는데, 뭐가 빠졌어요. 중요한 무언가. 아쉬운 무언가!

     

    그러다 보니 이 책 속 내용을 저자 또한 완벽하게 간파했는가 의문이 드는 겁니다. 정말 간파했다면 (1권과 2권처럼) 이것보단 쉽고 간결하게 설명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었던 겁니다.

    1권과 2권을 읽으며 책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뼈다귀 일러스트들이 이해에 정말 많이 도움이 되고 이 일러스트의 역할이 적잖구나 싶었습니다. 도식화가 정말 잘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 정체성에 한 수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이해를 돕는 일러스트가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지만 이해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지겨운 가운데 잠시 쉬어가는 눈요기거리 정도의 역할일 뿐입니다. 

     

    간결한 일러스트는 이 책을 이해하는 주요한 역할을 했었지만, 제로 편에서는 일러스트가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4. 1권과 2권이 재밌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아닐까?

     

    1권과 2권을 읽을 땐 핵심이 그렇게나 쏙쏙 들어왔지만, 제로 편에선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일까, 계속해서 의문이 든 채로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다 이유를 찾았습니다. 1권과 2권 속 내용은 학창시절, 교육을 받으며 혹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어디서든 얻어들은 내용이 있어 기초 지식이 있습니다. 기억 너머 알고 있지만 남한테 설명해줄 만큼 간파한 정도는 아니니, 간파한 누군가 핵심은 이거다, 너가 알아야 할 건 딱 이만큼이다, 정해서 요약해 알려주니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기초지식들이 테트리스 하듯 차곡차곡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로 편 속 내용은, 특히 우주와 물리, (이전 편보다 더 복잡한) 종교에 관한 내용은 이과가 아닌 이상 기초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기초지식 없는 채로, 간결하지도 않은 내용을 읽어나가려니 테트리스가 정리되는 느낌이 아니라, 비료 없는 척박한 땅에 바닥 공사부터 하는 기분입니다. 지겹고, 당장 쓸데도 없는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습니다. 

    제로 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도 컸나 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1, 2권을 읽으며 좋다 못해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하며 읽었고, 채사장 저자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지적 성장의 과정과 방황, 지적 충실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던 <열한 계단>도 정말 정말 재밌고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556쪽. 적지 않은 두께이니 당연히 많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많을지언정 두껍고 깊은 내공을 지니지는 못해 아쉬운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였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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