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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도시 바간에서 거리두는 법을 배웠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2020. 3. 2. 23:51

    #1.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것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저 사람과 학교 다닐 때 같은 반이었다면 1년 내내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겠지" 싶을 만큼 성향이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과의 관계는, 초반에는 대체로 신선했습니다. 나와 반대인 저 사람의 어떤 면들은 장점으로 보였고, 나도 저런 점은 배워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저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구나, 자극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저 사람과 같이 지내면 나의 다른 면들이 발휘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타고난 기질을 거스르지는 못해서, 몇 달이 지나면 꼭 급하게 먹은 밥에 체한 듯 일은 원활하지 못했고 나쁜 감정은 쌓였습니다. 

    재작년의 제가 그랬습니다. 나빠질 대로 나빠진 그 사람과의 관계 문제는 엉킬대로 엉켜서 억지로 잘라내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중재에 나선 상사도 어쩌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르자 팀은 해체되었고 한 층에서 일을 하며 오다가다 보는 사이가 되었지만 마주쳐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잘못의 원인을 찾기 바빴습니다. 탓과 덕분, 그 사이를 오가며 저울질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쉽게 풀렸을 수도 있을 사소한 오해와 인정하면 그만인 각자의 성향 차이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세상을 지배하며 자존감과 자아를 망가뜨리던 그 일들과 거리를 두고서야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한바탕 홍역처럼 사태를 치르고 맞은 휴가에 한적한 미얀마로 혼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몇 권의 책을 싸들고 갔고, 그 중 한 권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입니다. 

     

    누군가 너의 인생의 최고의 여행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저는 미얀마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싸고 맛있는 현지식 먹는 걸 좋아합니다. 멋드러진 식당에서 호사를 누리는 여행보다는 현지의 일상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현지 일상의 조각을 조금이라도 엿보고 나면 이제 곧 돌아갈 나의 일상에서의 나에게도 왜인지 조금 더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미얀마 바곤에서 타고다녔던 오토바이입니다. 곳곳에 있는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바간 곳곳을 다녔습니다. 구글맵을 켜는 순간 여행의 즐거움은 반감됩니다. 어떤 길이 나올까 궁금해하고 찾아나가는 게 여행의 참 즐거움 아닐까요? 

     

    #3. 타인의 단점을 깨닫는 건 본능이다. 

    장점을 발견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재능이다.

     

    주변엔 온통 오래된 것들, 오래된 믿음들이 가득한 곳. 뜨고 지는 해를 온전히 맞으며 탄생하고 소멸한, 태어나고 사라진 많은 것들과 많은 영혼의 흐름 속에 내가 있음을 깨달으며, 회사라는 그 작은 공간에서 미워하고 시기하고 상처받고 질책하고 서로를 망가뜨렸던 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도대체 무얼 위한 일인가, 누구를 위해 그토록 상처받았나, 생각하려 했지만 구체적인 이유들도 상황들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떠올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가 되어 살아간다. 인간의 운명이다. 개별적인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상 인간은 서로 다름이 원칙이다. 굳이 무리해서 다름을 부각시킬 필요는 없겠지만, 타고난 유전자가 다르므로 살아가는 취향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_ <약간의 거리를 둔다> 137쪽 중에서

    타인의 장점을 깨닫는 것이 재능이라면 타인의 좋지 않은 점을 깨닫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본능이다. 장점을 발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재능이다. 따라서 갈고닦지 않고서는 개발되지 않는다. 보다 적극적으로, 의식적으로 이 재능을 꽃피우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점의 발견은 입에 발린 말이나 아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부는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속임수다. 장점을 발견하고 이를 제대로 칭찬하는 일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를 완벽하게, 아름답게 완성하게 위해서는 평소에 애정을 갖고 사람들을 충분히 관찰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_ <약간의 거리를 둔다> 131쪽 중에서

    때양볕에서 왠종일 오토바이를 타며 유적지를 떠돌다 들어간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받아들고 대나무로 만든 의자에 기대 반쯤 누워 <약간의 거리를 둔다>를 읽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모두 읽었습니다. 글자를 읽다 하늘을 보고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면 카페 천장 위로 쉼없이 돌아가는 커다란 펜이 보였습니다. 커다란 펜은 빠른 듯 느린 듯 제 속도로 돌았습니다.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멍하니 돌아가는 펜을 바라보았습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돌고 돌고 돌아 제자리로 펜이 돌아오는 가운데 바람은 일었고 뜨거운 땀은 식었습니다. 몇 십 시간을 날아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도 이따금씩 머리를 들던 뜨거웠던 마음도 가라앉았습니다. 

     

    #3. 일상이 숨막힐 땐 거리를 두려 합니다.

    껌딱지처럼 들러붙은 일상과 의식적 거리두기를 시도합니다.

     

    일상이 숨막힐 때가 있습니다. 일도, 사람도, 한여름 아스팔트 위 껌딱지처럼 몸에 들러붙은 것만 같습니다. 뜯어내고 긁어대고 문질러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긋지긋하게 몸에 들러붙은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정신을 다른 곳에 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억지로 떼어내려 할 때는 지겹도록 떨어지지 않더니 어느새 사라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해결이 되지 않을 땐 상황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합니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손 쓸 수 없이 복잡하던 문제도 그렇게 복잡하지만은 않음을 깨닫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말에 교외로 혼자 나가 깨끗하고 정갈한 호텔을 잡고서 시간을 보내보기도 하고, 속도 내 자전거를 타면서 땀을 흘려보기도 하고, 달리기를 하면서 생각을 멈춰도 봅니다. 글을 쓰면서 내 속의 욕망을 분출해보기도 하고,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면서 정신을 팔기도 합니다. 그렇게 일상과 생각과 복잡한 마음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그러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목적은 어차피 한 가지밖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한 후 나머지는 마음을 비우는 게 상책이다 (...) 절망하고 원망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나서서 나의 상황을 개선해주리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_ <약간의 거리를 둔다> 151쪽 중에서

    약간의 거리를 둔다 표지 리커버판. 원래는 여자 사람이 저 포즈와 표정으로 성큼성큼 그러나 가뿐하게 물 속으로 걷는 모습입니다. 서점에서 리커퍼판이 보이기에 너무 귀여워서 찍어두었습니다. 전 초반에 구입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여자 사람 표지입니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_ <약간의 거리를 둔다> 121쪽 중에서

    지금 너무 괴롭다면 상황과 거리를 두어보세요. 의식적으로라도 생각을 멈추려고 해보세요. 다른 일 다른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면 나쁜 생각들, 감정들이 소멸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너는 정말 괜찮냐고. 상황이 어찌되었든,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어떤 상황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괜찮은 거니까요. 힘들수록 나 스스로를 탓하게 되더라구요. 그러지 말자고 저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밤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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