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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아저씨처럼 달리고 싶어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책 2020. 2. 24. 02:43
#1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얼떨결에
학교 다닐 때 가장 싫어하는 운동이 장거리 달리기였습니다. 그런 제가 마라톤을 시작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몸이 별로 좋지 않다고 느꼈고 운동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달리기가 될 줄은 전혀 몰랐죠. 초보 러너의 달리기 분투기는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했됐습니다.
#2 . 나도 하루키처럼 달리고 싶었지만,
진짜로 달리게 될 줄이야
달리기와 재즈와 맥주를 좋아하는 하루키 아저씨의 에세이들을 좋아합니다. 단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나 좋아하는 에세이 중 하나죠. 달리게 될 거라곤 전혀 생각지 않던 몇 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을 적에 생각했었죠.
"나도 하루키처럼 달리고 싶다. 뜨거운 햇살을 꾹 참고 힘든 것도 꾹 참고 피니시 라인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 맛을 나도 맛보고 싶다!"
언젠가 하루키처럼 달려보고 싶었죠. 언젠가 말이에요. 그 언젠가는 제 마음 속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수많은 언젠가들처럼 그저 바람으로 남아 있을 줄 알았습니다. 진짜 달릴 줄은, 전혀 몰랐어요.
아. 달려본 적 없던 시절엔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마라톤 뒤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잔을 고대하며 달린다는 하루키의 이야기에 말이죠. 하지만 냉정한 하루키 아저씨는 말합니다. 마라톤을 뛰어본 자만이 인생의 참 맛을 알 수 있는데, 그건 풀코스 마라톤에 한 해서라고요. 너무하네요! 달려본 적 없던 때에도 하루키의 글은 맛있고 재밌었지만, 달리고 난 후에 읽는 그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하지만 하프마라톤까지밖에 뛰어본 적 없는 제가
"하루키, 당신의 글에 공감했어요"
말한다면 하루키는 말하겠죠. 풀코스를 뛰기 전엔 완전한 공감이 아니라고요.
한 번도 하루키처럼 피니시라인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셔본 적은 없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맥주 같은 건 생각도 안 나더군요.
저도 꽤나 맥주를 좋아하고 5000CC도 마셔본 적도 있고 마실 자신도 있는 맥주러버지만 그 더운 날 달린 직후까지 알코올이 들어갈 몸은 아니거든요. 그냥 차가운 물, 물, 물, 물, 물, 그거면 되겠다 싶던데. 하루키는 도대체 어느 정도로 맥주를 좋아하는 거죠? 이 정도라면 좋아한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것 같네요.
#3 . 적어도 최후까지 기지는 않았다!
처음 마라톤을 시작할 줄 몰랐던 것처럼, 이렇게 몇 개월간 계속해서 달리게 될 줄도 몰랐죠. 일주일에 50KM씩, 100KM씩 훅훅 달리는 달리기 러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꾸준히 몇 달간 지속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제가 대견해요.
지난해 뛰었던 10KM 마라톤 메달 3개. 하루키에게 달리기의 원동력이 피니시라인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라면 저에게 달리는 원동력은 완주 후 받는 메달입니다. 지난해 10KM 마라톤 3번 하프 마라톤 2번을 완주해서 총 5개의 마라톤 메달을 획득했지요. 네, 제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던 건 이걸 받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생 고생 그런 고생도 없던 하프마라톤. 지난 해 두 번의 하프마라톤을 뛰었습니다. 하프마라톤은 완주 그 자체에 만족합니다. 끝까지 달린 것만으로도 저는 제가 대견합니다.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하루키는 말했죠. 그리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최후까지 기지는 않았다"
아. 첫 하프마라톤은 정말이지. 기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할 만큼 정말이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완주를 한 것에 만족, 만족, 대만족입니다. 기지 않고 완주한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건, 연습 부족이기 때문이겠죠. 반성을 많이 했으나 두 번째 하프 마라톤 도전 때도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하핫.
#4. 다행히, 마라톤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봄, 여름, 겨울을 지나 또 다른 봄을 맞는 지금까지!
다가오는 봄, 시간 단축을 목표로 달리기 연습을 꾸준히하는 것이 바람인데, 이런, 코로나가 왔네요? 코로나 여파로 몇몇 달리기 대회는 취소되거나 연기되거나 한 것 같지만 올해도 도전은 계속됩니다. 제 목표는 풀코스니까요!
전혀 달릴 줄 몰랐지만 달리기를 시작한 것처럼, 10KM를 완주할 줄 몰랐지만 완주한 것처럼, 21KM는 절대 못 할 것 같았지만 지난 해 두 번이나 완주한 것처럼, 풀코스도 절대, 네버, 못할 것 같지만 언젠가 보란 듯이 해내보이겠죠!
그날까지 연습 또 연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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