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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많기로 소문난 구글에서도 통했다?: <회의에서 똑똑해 보이는 100가지 기술>책 2020. 3. 31. 23:57
#1. 작은 서점이 아니었다면
이런 실용적이고도 쓰잘데기없고 재치 넘치는 책을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것!
그날, 그 작은 서점에 들르지 않았다면 이 주옥 같은 책을 발견하지 못했겠지요!
제가 근무하는 회사는 한 달에 한 번씩 팀원들이 모두 함께 서점에 방문하도록 권합니다. 큰 서점에도 작은 서점에도 독립서점에도 가는 건 자유라, 콧바람을 쐴 겸 멀리 나가기도 싫은 겸 파주 땅콩문고로 팀은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형 서점이라면 눈에 절대 띄지 않아 결코 살 수 없었을 바로 이 책을 발견했지요.
실제로 회의 때 똑똑해 보이려고 이 책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너무 재밌어서 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재치라니요! 작은 서점의 이점은 그렇습니다. 서점 주인의 취향이 본격적이고도 절대적으로 반영되는 곳이죠. 광고와 신간과 메이저 출판사 위주인 대형서점에서는 이런 작은 출판사의 오래된 구간을 메인 매대에 비치해놓지는 않겠죠. 절대로. 하지만 땅콩서점의 가장 큰 메인매대에 <회의에서 똑똑해 보이는 100가지 기술>이라는 이 실용적이고도 쓰잘대기 없는 책은 밝은 옥색 빛깔 표지를 빛내며 있었지요. 냉큼, 들었습니다.
#2. 구글 출신 회의 천재가 공개한 화제의 웹툰
이런 걸 알아 뭐하나 싶은 제목의 이 책을 몇 페이지 넘겨보고서, 딱 짐작했습니다. 아, 이 사람 회의의 달인이다! 싶었거든요. 회의 때 하등 쓸모없는 말을 지껄이거나 자기 의견 하나 없이 남한테 얹혀가거나 분위기에 휩쓸려가는 사람이라면 절대 회의에 관한 이런 대단한 통찰을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40번 케이스 상황 아주 잘 알죠. 팀장인 그 사람은 팀원 전체 회의만 끝나면 꼭 한 명을 불러서 따로 이야기하자 합니다. 저도 그 한 명이 되었던 적이 있지요. 무슨 이야기하냐구요? 점심메뉴에 우스갯소리에 별 쓰잘데기 없는 말 하다 회의실 나옵니다. 회의실 나올 때는 반드시 큰소리로 업무 이야기를 합니다. 뭐 대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은양 대단한 지시라도 하는양 엄청난 통찰로 정리라도 해주는양 말이지요. 주둥이를 때려주고 싶습니다. 실제로 저자 새라 쿠퍼는 구글과 야후에서 근무하며 15년 경력의 경력자이고, (아마 지금은 훨씬 더 되었겠네요) 스스로 회의 때마다 동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놀라울 정도로 똑똑한 직원이라 칭합니다. 그녀가 블로그에 적은 이 웹툰식 풍자는 500만 뷰를 돌파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직장인이라면, 이 책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짜루요. 우리 회의 때 열불 나서 폭발할 뻔한 적 한두 번, 아니 수십 번도 더 있잖아요? 지겹도록 말이지요.
제가 거친 팀장 3명은 14번 케이스에 모두 해당합니다. 회의를 주도하고 싶던 그 사람들은 회의 때 사회자 역할하기를 즐겨했는데요, 그래서 팀원들이 의견을 내길 바라면서도 자기는 정작 의미 있는 의견을 내지 않았지요. 남의 말을 곱씹거나 반복하거나 평가하거나 하는데요, 그 모든 경우가 짜증나고 열불 나지만, 특히 남의 의견을 평가할 떄는 더 화가 납니다. 자기는 의견 하나 안 내면서 남의 의견은 왜 좋네 나쁘네 별로네 당연하네 토 달기 바쁜가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팀장으로 앉아 있는 이상 팀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하기는 절대 불가합니다. 회의 분위기 망치는 주범이지요. #3. 나는 증오한다, 회의 때 자기 의견 없는 인간들을!
저는 증오합니다. 회의 때 자기 의견 없는 사람을요! 제가 근무하는 회사는 한 팀이라 해봐야 고작 3~5명입니다. 그 작은 팀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의견의 할당량이라는 게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5명의 팀원이 있다면 각 사람에게 20%만큼의 의견 할당량이 있는 겁니다. 한 사람이 그 역할을 안 할려 치면 다른 사람들이 그 할당량을 채우느라 애를 써야 하는 겁니다. 그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거고 팀원으로서 자격 박탈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의 때 준비해오고 의견을 말하려 애쓰는 건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성의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도 시간이 남아 돌아서 회의 때 준비해오고 회의 주체자에게 도움이 되는 말 한마디라도 더 해보려고 생각에 애쓰는 건 아닙니다. 어쨋든 팀 구성원의 한 명으로써 내 책임을 다하려는 성의이고, 다음에 내 안건으로 회의를 할 때, 내가 준비해서 의견을 냈었던 것만큼 저 사람도 준비해서 의견을 내주길 기대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팀원으로서 신뢰의 기본인 거지요.
10번 케이스. 솔직해 보이던 자기비하 농담이 처음엔 그릇이 넓어 보이고 배포 있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자기는 마치 한 단계 위에 있다는 듯 거침없이 자기 비하하는 태도가 사람을 커보이게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보니 알겠더라구요. 그 사람은 자기를 낮춰 비하할수록 남들은 함부로 자기를 비하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그럴수록 자기도 높아진다는 걸 알았던 거죠. 근데, 이 기본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의견 없이 남한테 얹혀가거나 어디에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 하나마나한 말을 해대거나 돋보이고는 싶은데 능력은 없어 남이 내놓은 의견의 단점만 말하기 바쁘다거나(어떤 의견에도 찾을라치면 단점 없는 의견이 어디 있나요? 이런 회의 분위기 망치는 인간들 딱 질색입니다) 우리 팀 회의 많이 하는 바쁜 팀이라고 다른 팀에 과시하고 싶은 허수아비 팀장이라거나 회의를 주도하기는 해야겠는데 정작 자기는 의견이 없어서 사회자 역할하기 바쁜 팀장이라거나... 저도 10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하니 회의 때 어떻게든 미꾸라지 같이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딱 봐도 보이고 티가 납니다.
객관적인 척, 비판적인 적, 현실을 꿰고 있는 척 질문만 해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미 있는 의견은 한마디도 안 내면서 자기가 무슨 소크라테스라도 된 양 산파술이라도 펼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3. 직장생활 10년, 회의 때 보던 속 터지는 사람들 여기 다 있네!
고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회의에서 똑똑해 보이는 100가지 기술은, 만약 회의를 한두 번 하고 말 사이라면 어쩌면 통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늘 얼굴 보고 회의를 반복해서 하는 사이라면 이 기술은 절대, 결코, 아무리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특히 저는 자기 의견이 중요한 직업입니다. 글을 다룬다는 건, 책을 만든다는 건,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의견을 가진다는 게 절대적인 역할을 합니다. 자기 의견 없이 끌려다니는 에디터를 믿고 일할 저자는 없을 것이며 그것은 자기가 만드는 책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자기 의견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회의 한두 번 해보면 압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미꾸라지인지 책임 지는 말을 하고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회의 한두 번 해보면 압니다.
이 책은 그걸 다 아는 사람이기에 쓸 수 있는 번뜩이는 통찰과 해학이 있는 책입니다. 보다 보면 소리 내 웃음 터지는 장면 꼭 있고 한두 명 반드시 떠오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쩔 때, 빠져나가고 싶은 회의를 마주하는 순간이 오면 이 책의 몇 부분을 실천해볼 수도 있겠지요. 똑똑해 보이는지 헛똑똑이로 판명나는지는 그때 가서 판명 나겠지요. 이 책의 효용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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