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나는 공간을 바꾼 덕분에 인생의 암흑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인생을 바꾸고 싶거든 공간을 바꾸자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개합니다>
#1.
내 인생에 서른앓이는 없는 줄 알았지 뭐야
서른앓이.
난 서른을 맞을 때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삼십대가 반가웠습니다. 저는 20대의 방황이 싫었습니다. 취업에 대한 걱정과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음, 내 손으로 벌어먹을 수 없다는 슬픔을 얼른 털어내고 싶었거든요. 30대를 맞을 때도 연봉은 적었지만 더 나아질 수 있다 생각했고 그러기에 충분히 젊은 나이라 생각했기에 이제 시작이다, 나도 이제 안정의 시기에 접어들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첫 직장, 30대 초중반의 선배들이 갖는 마음의 안정을 동경했습니다. 저도 불안과 의심과 신입의 시기를 얼른 벗어나서 그들처럼 의연한 자세이고 싶었습니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이것도 저것도 몰라서 물어야만 알 수 있고 도움을 받아야만 해낼 수 있는 제 처지가 정말이지 싫었거든요. 어디도 기대지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고 슴덩슴덩 일을 처리해내고 인간관계에서도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 일보다 회사에서의 관계 문제가 너무도 제 마음을 어렵게 하던 시기였습니다. 남 눈치 보지 않는다는 것, 말 한마디 편안하게 건낸다는 것, 자연스럽게 행동한다는 것 그 모든 관계의 문제가 저에게는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30대 선배들은 '뭐 그런것쯤' 하는 태도로 보였고 관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흘러가는 그들이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2. 뒤늦게 맞은 서른앓이,
내 인생에서 가장 뚱뚱하고 가장 술을 많이 마신 서른셋과 서른넷
서른앓이 없이 지나는 줄 알았습니다. 뒤늦게 서른앓이를 할 줄은 전혀 몰랐죠. 서른하나도, 서른둘도, 나이먹음을 자연의 흐름인양 세상의 이치인양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제가 서른다섯을 앞두고 적지않은 방황을 했습니다.
서른셋과 서른다섯의 초반. 이 시기에 저는 제 인생의 어떤 시기보다 살이 많이 쪘습니다. 제 인생의 어떤 시기보다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그 시기, 저는 저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서른셋과 서른다섯 사이, 저는 제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무언가 하지 않으면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도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그게 무서웠습니다. 지금의 직장이라 해봐야 기껐해야 3-4년 이곳에서 더 다니겠다 싶었고, 이 직업이라 해봐야 내가 회사를 차리지 않는 이상 마흔 중반 이후에도 지금의 연봉보다 더 많이 받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습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은 모르겠고,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많았죠. 제빵학원을 다녀보기도, 이민을 꿈꾸며 박람회에 가보기도, 컴퓨터 학원에 다녀보기도 했습니다. 이것저것 뭘 더 해볼 수 있을까 시도는 했지만 딱히 내 것이다 싶은 것은 없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저는 술로 도피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날들에 술을 마셨습니다. 저녁밥 먹고 한두 캔 마시던 맥주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늘었고 주말을 앞둔 날은 500cc 맥주를 6캔씩 8캔씩 들이켰습니다. 술을 잔뜩 마시고 무거운 머리를 한 채로 다음 날 제빵학원엘 컴퓨터학원엘 갔습니다.
서른다섯. 이대로 살다가 내 인생은 몸도 마음도 완전히 망가진 인생이 되겠구나, 망상 덩어리 인간이 되겠구나, 후회만 반복하는 멍청이가 되겠구나 싶었을 때 정신이 들었습니다. 이 나이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 여겨져서 불안했던 그 마음이 저를 정말 시궁창으로 몰아넣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이대로 머무느냐 더 나아지느냐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대로 망가지느냐 보통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냐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구나 깨달았습니다.
#3. 공간이 바뀌자 내가 변했다.
인생도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것 아닐까?
내가 서른다섯의 암흑기를 벗어난 결정적인 계기는 이사였습니다. 암흑의 시기, 8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망원동 붉은벽돌 빌라에 살던 저는 살았습니다. 그 집은 보일러가 거실에 노출된 채 설치되어 있어서 겨울에 보일러를 틀면 우우우웅~ 하는 거대한 보일러 소리가 집 전체에 울렸고, 복도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서 거미줄이 지저분하게 걸쳐져 있었으며, 창은 오래되어서 잘 닫기지도 않아서 겨울이면 창에 테이프를 붙여서 난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 했습니다. 망원동에 위치하면서도 1억 2천이라는 저렴한 전세인데다 16평에 방이 세 개나 있다는 점, 집이 하얀색 페인트질로 나름의 리모델링을 했다는 점에 혹해서 그 집에 이사가겠노라 결정했었지만 지나고 보면 도대체 왜 그런 집에 들어가 살겠다고 결정을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서른다섯의 여름, 강서구의 아파트에 전세로 이사를 오면서 술과 음식으로 도배되었던 암흑기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공간이 가지는 힘을 저는 망원동 빌라를 떠나오면서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이사 온 강서구 아파트 베란다로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날에는 잠실타워와 서울타워가 보입니다. 왼쪽 끄트머리로 한강이 보이고 아래로는 숲이 보입니다. 계절의 바뀜과 날씨의 변화를 그날그날 온전히 느낄 수 있고 하늘과 풀잎이 보입니다. 문을 열면 옆집 건물이 보이고 빛이라곤 남의 건물 사이로 겨우 들던 그 집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일입니다.
공간이 바뀌자 삶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매일 술로 도피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한 채 망상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음을 인정하고 하루 아침에 로또 맞듯이 생활이 달라지지 않음도 인정한 채 제 두 손으로 느리더라도 변화가 당장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도 변화를 일궈보려 합니다. 무언가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금씩 생산성 있는 일들을 하루하루 만들어나가보려 합니다.
살아가는 공간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봤기 때문일까요, 저는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우울해질 때 집을 찾아봅니다.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보고, 집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찾아들어가고, 좋은 집을 소개하는 영상을 찾아봅니다. 자전거를 타고 살고 싶은 동네로 가보기도 합니다. 좋은 집은 블로그에 스크랩해두고 나도 이렇게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미래를 상상하며 만들어가보려 합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이 책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개합니다> 같은 책들을 찾아봅니다.
#4. 자기 공간을 컨트롤할 수 있을 때
인생도 컨트롤할 수 있다
'도쿄R부동산'은 새로운 시각으로 부동산 물건을 발굴해 소개하는 웹 사이트입니다. 보통의 부동산은 부동산이 속해 있는 지역의 물건 정보를 가지고서 그 근방만 고객에게 소개해준다면, 도쿄R부동산은 전국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발굴합니다. 고객에게 의뢰를 받기도 해서 적합한 공간을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주기도 합니다. 이들은 획일적인 공간이 아니라 특색 있는, 그 공간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법한 곳들을 발굴해 고객을 찾아 연결해주는 것입니다. 이들은 집을 팔거나 임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자유롭고 윤택한 삶과 일을 위해 라이프스타일을 임대한다고 스스로를 정의합니다.
그렇기에 도쿄R부동산이 고객에게 연결해준 집들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창고를 개조하거나 카페와 디자인 사무소가 함께 있는 지역 살롱을 만든다거나 인쇄공장이 복합건물로 다시 태어난다거나 초도심 미니빌딩을 매입한다거나 하는 식이지요. 책은 흔하고 흔한 인테리어, 뻔한 집의 구조가 아니라 재미있고 유쾌한 집들을 소개합니다. 이 집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집에 사는 사람들 또한 자기만의 개성과 삶의 방식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책에는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짧은 인터뷰도 싣고 있는데, 실제로 그들이 삶을 보는 방식은 획일화되어 있지 않으며 유쾌합니다.
#5 나의 공간은 나의 자존감과 연결된다
내가 사는 공간은 라이프스타일의 집약체입니다. 그 사람의 취향과 성격과 삶의 방식과 철학이 사는 공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떤 공간에 사는지는 그 사람을 말해줍니다. 비싸고 좋은 집이 아니더라도 내 취향의 공간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십대의 누군가, 그리고 삼십앓이를 하고 있는 누군가, 지금 인생이 암울하고 우울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면 사는 공간을 바꿔보라도 나는 꼭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그 나이대의 사람들은 보통 삶의 조건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아서 작고 좁은 곳에서 지낼 확률이 높고 그 공간이 그 사람을 옭죄고 있는 경우 또한 많기 때문입니다. 몇 개월이지만 한때 고시원에서 살아보았던 저는 그런 공간이 얼마나 사람을 우울하게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조금만 발품을 팔고 정보를 알아보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공간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 있다고 경험상 알고 있고 또 누구든 그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우울한 공간에 계속 머무르면 생각도 행동도 공간의 우울함을 그대로 닮습니다. 의식적으로라도 나의 취향, 나의 발견, 나의 경험, 나의 추억을 주변에 계속 보이도록 만드는 건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