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은 특별할 거라는 착각: <죽음의 에티켓>

본질적자유 2020. 4. 1. 23:58

#1.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던 날, 죽음을 알게 된 날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경상도 남자의 스테레오타입에 우리 아빠는 딱 들어 맞습니다. 말이 없고 무뚝뚝하고 묵묵합니다. 바라는 걸 좀처럼 소리내 말하지도 즐거워도 슬퍼도 겉으로 감정 표현하지 않던 아빠가 우는 옆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단 사실보다 아빠가 울고 있다는 사실에 슬퍼졌습니다. 

부산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 아빠는 할머니와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고 다정스런 말 한마디 건네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빠도 할머니의 사랑스럽고 자랑스런 어린 아들이었을 거란 사실을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야, 당연한 그 사실이 진짜처럼 여겨졌습니다. 본 적 없는 젊은 할머니와 어린 아빠의 모습이 울고 있는 아빠와 나 사이에 영화 스크린처럼 뿌옇고 따듯하게 그려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의 죽음도 모든 인류가 겪은 죽음과 다르지 않겠지만, 그걸 상상하는 일은 힘듭니다.

 

체리색 몰딩이 유난히 돋보이던 병원 지하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할머니의 영정사진만이 죽음을 말할 뿐,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접대하는 모습은 삶의 풍경이었습니다. 소중했던 한 사람이 죽었지만 살아있는 우리들은 슬퍼야 마땅할 그 순간에도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상이 계속된다는 걸 이상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2. 죽음의 명단에 우리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마치 그런 건 모르는 듯 살아간다

 

우는 아빠를 바라보았던 화장터 로비에서 천장에 달린 모니터 너머로 지금 불타고 있는 사람의 명단이 차례차례 위로 올라가다 결국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 로비에 있던 우리 모두의 죽음도 저렇게 오겠구나, 우리 모두 결국 이토록 차갑고 허망하게 사라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사실 죽음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그건 언제나 다른 사람의 죽음일 뿐, 단 한 번도 당신의 죽음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확실한 사실을 보지 못하고 회피해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죽어간다는 사실 말입니다. _ <죽음의 에티켓> 12쪽 중에서

추석이면 늘 가던 가족묘에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묘 옆에 할머니의 묘가 봉긋하게 생겼습니다. 명절에 이곳으로 올 때마다 할머니의 묘도 이제는 추억이라 불러야 하는 걸까 슬픔이라 해야 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생각하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죽음은, 대체로 문학적으로 설명됩니다. 누구도 죽음은 경험한 적 없으니, 죽음을 이야기할 땐 필연적으로 삶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죽음이 있으니 한시적인 삶을 알차게 살라는 교훈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당연하게도 나의 할머니가 그랬듯, 침대 위 차가운 몸이 되는 것부터 병원 지하실의 차갑고 눅눅한 영안실을 거쳐 몸 하나 겨우 들어가는 관을 지나 화장터를 거쳐서 항아리에 담기든 자연으로 뿌려지든 봉긋한 묘가 되든 하겠지만, 나의 죽음을 떠올릴 때 그 과정을 생생하게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막연하고 뿌옇게 그려질 뿐이죠.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전해 드는 순간부터 침대 위 시신이 되는 과정, 영안실 속 차가운 몸이 되는 과정, 관 속에 들어간 나의 몸... 이 책은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삶에 대해 각성하게 합니다.

 

#3. 죽음을 간접체험하게 하는 책,

큰 통찰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읽어볼 것

 

하지만 어쨌든 당신이 바라는 것보다는 일찍 죽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육체가 먼저 변하기 시작합니다. 느긋한 속도는 아닙니다. 극단적이어서 마치 몸이 갑자기 불균형에 빠져 버린 듯합니다. 힘은 다 빠져나가고, 나약함이 사지를 점령합니다. 분명 당신의 몸인데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런 느낌이 당신을 절망에 빠뜨립니다. 당신의 몸이 다른 때와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죽음은 여러 가지 종합적인 증상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어떤 증상들은 일찍부터 몰래 스며듭니다. _ <죽음의 에티켓> 35쪽 중에서

<죽음의 에티켓>은 그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하듯 묘사해줍니다. 문학적으로 교훈적으로 죽음을 그리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해 듣게 되는 순간부터 숨이 멎어 차가운 몸이 될 때 신체가 겪을 반응, 병원 침대 위의 시신이 되는 순간, 관에 들어가는 순간 등 죽음을 글로 체험하게 합니다. 죽음의 과정에 대해 익히 잘 알지만 그게 내 일이라 좀처럼 상상할 수는 없어서 <죽음의 에티켓>을 읽는 건 지금까지 알던 죽음의 글들과 다르게 다가옵니다. 

 

250쪽 약간 넘는 두껍지 않은 분량에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고 편집도 시원시원하게 되었습니다. 문단 나누기가 상당히 많이 되었는데 원서에서도 그런 건지 읽다 보면 궁금해집니다. 눈에 걸리는 문구를 만들기 위한 건지 분량을 늘려보려는 건지 원서도 이런 건지 말이지요. 

 

당신의 시신이 화장을 위해서 대기 줄에 섰을 때 냉기가 시신 쪽으로 마주 불어옵니다. 장례인들은 그 관을 스테인리스 금속으로 된 육중한 문을 통해서 하얀 타일로 장식된 공간에 밀어 넣습니다. 그 안에는 스무 명의 다른 고인들이 의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_ <죽음의 에티켓> 189쪽 중에서

깊이가 있다거나 통찰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책은 아닙니다. 죽음에의 접근 방식이 재미있고 눈길을 끄는 문구가 곳곳에 있지만 그뿐인 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그걸 잘 알아서인지, 잘 팔아보려고 애쓴 노력이 책 읽는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문구를 강조하려 밑줄을 지나치게 사용하다 보니 오히려 책에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자연스러울 감동이 억지로 짜맞추는 감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문단 나누기가 상당히 많이 되었는데 원서에서도 이런 건지 궁금합니다. 

죽음에 관한 책이란 삶에 대한 통찰을 얻으려는 목적이 클 텐데, 이 책은 통찰이라기보단 죽음에 대한 간접적 체험을 통한 삶에 대한 각성 정도의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면이 이 책의 매력이라면 매력입니다. 가볍게 소비하는 죽음의 책을 접하는 것도 재미있으니까요. 그동안의 죽음에 관한 책들은 충분히 무거웠으니.